트랜스젠더의 굳이 여대
최근 트랜스젠더가 여대를 합격했는데 여학생들이 반대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 많은 논쟁이 오고 가고 있다.
트위터에도 ‘#굳이여대’라는 트렌드가 상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서울의 많은 대학 중에 굳이 여대를 고집한 건 그 트랜스젠더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인정을 원했다는 뜻이다.
이 사회가 생각하는 여성상을 그들은 원한다.
그게 참 모순적이다.
성차별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일부 트젠들은 차별된 여성상을 원한다.
일부의 트랜스젠더들이 미디어에서 밝히는 여성관을 들어보면 꽤나 성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이다.
어릴 때 화장을 좋아하거나 소꿉놀이를 좋아해서 자신이 여자에 가깝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회가 씌운 성별 프레임이다. 그럼 어린 여자애가 태권도를 좋아하거나 축구를 좋아하면 남자에 가까운 것인가?
전혀 아니라고 본다.
좋아하는 취미나 기호 같은 건 성별의 특성이 아니라 그냥 개개인의 특성으로 봐야 한다.
어쩐지 19세기에나 어울릴 차별적 남녀관을 가진 채 트랜스젠더라는 성 소수자로서의 인권을 차별하지 말라는 건 왠지 조금 모순처럼 보인다.
이 트젠들이 과연 작금의 여성과의 갈등에서 피해자이기만 할까?
나에겐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트젠들의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성차별적 여성관과 그들의 이슈화되는 사회적 행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할까?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여대 학생들을 모두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사람들로 치부하면 곤란할 것 같다. 오히려 기존 여대생들은 무척 진보적이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가 많다.
하지만 멀리서 보는 것과 직접 접하는 건 또 다른 것이다.
사회 현상으로 관망하는 것과 바로 옆에서 함께 생활하는 건 이론과 실제처럼 명백하게 거리감이 있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사람들 누구나 범죄자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구치소가 우리 동네 옆에 지어진다면 반대하게 되는 지역주민들처럼 말이다.
막상 관청의 상세한 설명과 후속조치가 뒤따른다는 설명이 있으면 지역주민도 구치소 설립에 설득된다.
이번 사태는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소통과 교감, 이해가 부족해서 그들을 수용할 의지나 관대함을 여대생들이 아직 채 키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비단 여대생들만의 탓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고 어린 여대생들 역시 그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여대생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았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여대생들에게만 굳이 우리 사회가 “너희는 성소수자를 왜 안 받아들여?”라고 손가락질 하는 건 일종의 강압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 사회가 “우리는 성소수자를 차별할테니까 여성인 너희들은 우리와 달리 더 관대하게 받아들여라.”라면서 또다시 여대생들에게만 평등하라는 강압을 하고 있는 작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여대생들은 오히려 성차별과 성희롱 문화가 지긋지긋해서 여대 쪽으로 노선을 바꾼 사람도 꽤 많다. 남자와 부딪히기 싫어서 여대를 선택한 학생들 말이다. 여대에 합격한 성 전환자를 존중한다면, 기존의 그런 여대생들도 존중해줘야 한다.
그녀들에겐 20년간 남자로 살아온 트랜스젠더가 단숨에 여자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트랜스젠더가 아무리 자기가 여자라고, 어릴 때부터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변호해도 그녀들에겐 그저 남성 성기 없는, 남자로만 보일 뿐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여장 변태남자로도 보일 수도 있다. 그런 변태남과 화장실과 기숙사 방을 같이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여대생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안그래도 화장실 몰카나, 화장실 범죄 뉴스등이 충분히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젊은 여성들 아닌가…….
오히려 갑작스럽게 성소수자 인권만 존중하고 성다수자 인권은 무시하는 현실이 엄청난 불쾌감이 들수도 있다. 사회는 그녀들에게 젊은 여성 꼰대들이 성소수자를 차별한다면서 그녀들을 질타하면 그들은 아마 더욱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대화를 더 많이 추진해야 할 것 같다.
그 동안 미디어는 ‘트랜스젠더 매춘’ 같은 부정적인 면과 음란한 면을 주로 다루었다. 그래서 아마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트렌스젠더에 대해 좋은 시야는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유튭에서 화장 진하게 하고 긴 머리에 일부러 어머~어머~거리는 말투를 쓰며~ 자기는 예쁘니까 클럽에서 만나자마자 남자에게 작업 받는다며 자랑하는 트젠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 걸 여성적, 또는 걸크러쉬~라는 듯 이야기하는 트젠을 보며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허탈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얼마전까지 나는 그런 유튭이나 미디어의 정보를 통해 대부분의 성전환자는 구시대적인 여성상을 가지고 있고 다소 변태적이기까지 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 곳에서 혼자만 고고한 척 변하지 않는 고인물처럼 있다간 썩은내만 풀풀 풍기는 오물이 될 뿐이다.
과거에 죄악이라고 했던 일도 지금은 죄가 아닐 수 있는 세상이다.
과학의 발달에 의해서 성별도 얼마든지 다양화될 수 있고 성적 취향도 다양해졌다. 다름과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 끝없는 부딪힘과 갈등에 피폐한 사회가 될 뿐이다.
지금은 비정상처럼 보일지라도 나중에는 평범해질지 모른다.
90년대 서태지처럼 빨간 머리 염색을 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분홍색 머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많은 것처럼 말이다.
이번 여대생들의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사건을 보고나서 사회적 갈등임에도 낙관했던 건 우리 사회가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과 소통의 기회를 더 다양하게 제공해 줘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사회가 그들을 배척하고 있으면서 여성들부터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라는 건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자기 문제를 떠넘기는 고약한 짓이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여성들의 동조를 유도해야지, 여성들에게 비차별을 강압하면서 자기들은 오히려 차별한다면 그건 그릇된 진행이란 거다.
젊은 여성들 역시 성차별을 반대한다면 성소수자 차별과 약자 차별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취향이라느니, 불쾌감이라느니 해도 개별성도 존중하지 못하는 인권 차별은 결코 보편적 정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끝끝내 그 여대에 등록하지 못하고 포기한 트랜스젠더 학생의 뉴스는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이야기는 있었다.
그 여대의 어린 학생들은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했지만 졸업한 동문들은 오히려 그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환영한다면서 700명 넘게 서명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차별 없고 더 넓은 소통의 장으로 이끌어내려 애쓰는 모습이 당장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소통과 교감이 점차 나아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해서 정말 보기 좋았다.
아마 이 뒤에 우리 사회 시스템의 균형적인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소통과 교감을 통해
뚜벅뚜벅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지고 세상은 평화로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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