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책을 어릴 때처럼 많이 읽지 않았다.
어릴 때는 적어도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었는데…….
예닐곱 살 때 글을 알고부터 책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긴 그 나이의 내가 그 가슴 벅찬 설레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표현력을 구비하지도 못했을 거다. 유치원에서도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나는 책을 보았다. 그 때는 글자도 제대로 다 읽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책이 좋았다.
글을 알고 난 초기에 책을 읽을 때 접한 캐릭터들은 내게 거짓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었다. 나는 동화라는 게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글을 배웠고 책을 접했으니까 콩나무가 하늘까지 자라는 이야기나 여우가 인생을 이야기하는 이야기는 내게 옛날에 있었던 일이거나 충분히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일로 다가왔다. 글을 금방 익힌 내가 책속에 빠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쟤는 책을 한 번 읽으면 이름을 불러도 몰라.’라며 내가 왜 그렇게 책에 빠져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책을 지은 작가의 의도를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책 속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상상할 수는 있었다.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읽던 시기는 사춘기 때였던 것 같다.
사춘기 때 나는 친구들이 읽지 않았던 어려운 책을 읽었다. 고전이 주는 일부 구절들에 대해 조금 만끽하는 즐거움도 분명 있었지만 나는 그 내용을 이해하고 명상하며 작가들과 토론하는 독서를 익히지는 않았다. 그저 한 구절 맘에 들면 거기에 꽂혀서 내 시간은 물들어 버렸다.
그렇게 많은 고전들을 읽으며 그 묘미를 아주 조금은 맛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독서를 함으로써 나름의 허세가 생겨버렸다. 친구들이 모르는 지식을 나는 알고 있다는 비교 우월적 만족감은 책을 통해 겸손해진다기보다 오히려 더 오만한 자아를 키워냈다.
맨날 주말에 엄마 따라 교회 간다는 친구들에게 ‘니체 책 좀 읽어봐’ 라고 중학교 시절 이런 말이라도 하면 내 친구들은 아무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니체에 빠져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작가의 뜻을 이해를 했는지는 둘째 문제다. 그 책에 있는 구절들이 그 당시 현실이 마음에 안 들던, 반항적 기질이 많던 내게 적절하게 꽂힌 것이다.
지금나는 니체의 철학에 대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하긴 이제는 그 어떤 철학도 내가 어렸을 때만큼 매력을 가지고 탐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고등학교 올라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통해 깊은 생각을 가진 듯 자신을 꾸미면서도 사실은 그럴 듯한 철학가들이 써놓은 책에서 그들의 생각을 빼껴서 모사할 뿐 그들의 사상에 내 생각과 명상을 대입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해 본적이 없으니까.
그저 내 나이 또래보다 더 활자로 인한 정보를 접하고 또래들에게 잘난 척할 뿐이었다.
그 뒤로 어른이 되자 나는 심각한 나의 허영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겉똑똑이가 부리는 지식적 허영……. 내 안에 부재된 것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배웠는데 나는 그저 읽기만 한 동물이었을 뿐 나만의 철학과 사유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문자만 읽고 사유를 하지 않는다는 것!
스스로의 명상이 전혀 없다는 것!
그저 살아 움직이는 책장일 뿐이었다는 것!
나는 내가 읽은 책을 통해 지식은 쌓고 있었지만 지혜를 쌓지는 못했다는 뜻.
그래서 예전처럼은 탐하듯이는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한 때가 스무 살 때.
서른이 넘어가자 나는 과거에 내가 읽었던 책들을 다 까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의 방대한 독서량을 잘난 척 할 수도 없다.
요즘 다시 한 권 두 권 책을 손에 쥐며 작가와 대화를 하듯 책을 읽는다.
읽다 보면 작가의 성품도 짐작이 되고 왠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을지 대강 짐작이 된다. 웃음이 날 때도 있고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읽는 책을 써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활자를 보면 작가와 대화를 한다.
글의 읽다보면 작가의 심중을 짚기 위해 노력한다.
왜 이 작가는 이런 글을 쓰려 했을까?
활자 이면의 여백, 침묵 속에서 작가와 대화하고 싶어서 글을 읽는다.
때때로 제목만 봐도 왠지 이 작가가 어떤 내용의 글을 쓰고 싶어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 좀 야해진 건지는 몰라도 이제 내가 하는 독서는 하나의 대화다.
작가와 내가 나누는 1대1의 스트립쇼 같은 대화다. 작가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냉철한 사람인지,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인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는 그들이 쓰는 문자에 잘 드러난다. 나는 그들이 입은 문자를 하나 둘 벗기면서 그들을 내밀한 속내를 조금씩 들여다보며 결국 나의 속내까지 하나 둘 보여주는 독서가 선사하는 관능의 세계에 돌입하게 된다.
그건 정말 그 어떤 포르노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이제 내가 느낀 독서 후기들을 내 블로그에도 공개하고자 한다.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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