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춘기 이후로 치과에 가는 걸 엄청 싫어했다.
사춘기에 아말감 처리를 할 때 생전 처음 경험했던, 머리를 울리는 ‘지이잉’하는 스케일링 기계 소리가 소름이 끼쳤다.
그럼에도 나는 치과에 가서 금니를 하게 되게 스케일링 치료를 받게 되고 잇몸치료를 받는 현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치통이 심해지면 치과에 안 갈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켈링
크라운
임플란트…….
내 주머니를 가볍게 만드는 그 비용이 걱정이긴 하지만 내 치아가 지은 업이 그렇게 많은 걸 어쩌겠는가…….
오늘도
치과에서 잇몸치료와 스케일링을 받았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마취 주사를 맞았지만 그게 더 아팠다.
잇몸 치료 중에 고름이 나온다면서 중계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민망했다.
내가 부실해진 치아로 그동안 지은 온갖 업장들이 소름끼치도록 부끄럽고 아프게 인식되고 치유받는 시간.
문득
내 치아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이가 마치 약사여래의 현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치료가 고통스러울수록 기도비 대신 치료비를 주고서 이렇게 치과 의사로 현신한 약사보살님과 같은 의사 선생님께 나의 업장을 치료받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내가 이 치아로 과거에 어떤 업을 지었는지 ‘지이잉’거리는 기계음들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런 과정 속에 치아 치료의 고통을 인식하는 마음은 잦아들고 나의 업을 반성하는 시간만 남게 되었다.
기껏 잇몸 치료 시간에 너무 나갔나?
어쩌면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내 눈앞에서 부처의 현신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내 밥상의 식재료를 챙겨주는 농부일수도 있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치워주는 청소부일수도 있다.
그런데 중생들은 어리석게도 결핍이나 부족의 고통을 겪기 전에는 그 고마움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항상 고통 뒤에 부처의 현신들에게 감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치과를 다니면서
주변의 부처의 화신들게 항상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가자는 각오를 되새기게 된다.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라서
치과 치료를 멈추면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불성의 연계와 그 고마움을 금방 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되도록 항상 유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래도 개불자(개인불교신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