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표지 자체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성의 입을 가린 저 나방은 무슨 의미이고 양들은 뭘 의미하는 것이고 또 양들은 왜 침묵했을까?
스릴러 영화다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오싹했달까.
막상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숨어 있는 상징성과 실마리에 어지러웠다.
영화감독들이 천재라는 걸 실감했다.
다만 최근 다시 보고 나서 조금 아쉬웠던 건 만약 영화 뒷부분에서 좀 더 공포스럽게 촬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점?
그러면 아마 나 같은 겁쟁이들은 눈을 감고 못 봤을 것이다. 심장 마비 왔거나…….
영화 첫 장면에서 가녀린 여자 주인공이 험난하고 어지러운 숲을 힘들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태위태한 그 환경 속에서 꿋꿋이 달려가는 클라리스를 보면서 가련하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양들의 침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여주를 응시하는 렉터 박사의 표정이다.
이 영화의 압권이 아닐까.
이 영화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경쟁하는 FBI에서 그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이 상관인 크로포드로부터 ‘버팔로 빌’이라는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라고 명령받으면서 시작한다.
싸이코패스 연쇄 살인자의 심리를 알기 위해 찾아간 한니발 렉터 박사는 역시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자기 환자 9명을 살해한 죄로 정신 이상 범죄자 수감소에 복역중인 전직 정신과 의사였다.
헐리웃 영화에는 여러 악역들이 있는데 한니발 렉터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캐릭터 같다.
최고 엘리트면서도 잔인한 싸이코패스.
질서 정연하게 사색하며 이성적인 조언을 하면서도 아주 세심한 것에서 감정을 자극받아서 돌발적인 살의까지 드러내어 마침내 생명을 파괴까지 하는 이중성.
특히나 렉터가 클라리스를 처음 만날 때 꿰뚫어보는 듯한 그 눈빛에서 나는 섬찟한 소름을 느꼈다.
안소니 홉킨스는 마치 악마는 먼저 마음에 침투하는 법을 안다는 걸 실감하게끔 그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죠디 포스터의 연기가 결코 안소니에 뒤지진 않았다. 그녀는 치우친 현실 속에서 아슬아슬하면서도 흔들리며 고뇌하는 여성의 캐릭터를 아주 잘 표현해 주었다.
비틀비틀 위태롭지만 길을 찾아서 앞으로 전진하는 젊은 여성.
예전에 보고 나서 십수년 지나서 다시 한 번 더 보게 되니 느낌이 새롭다.
그때는 그저 단순히 싸이코 패스 범인을 찾는 스릴러물로 보게 되었지만 지금은 마치 여성 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별적 면을 많이 다루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영화 중에 여성의 외피를 여성성이라고 믿고 그걸 수집하기 위해 뚱뚱한 여성만 노리고 그 피부를 벗기는 싸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한다. 그는 여성의 피부를 뒤집어쓰면 자기도 여성으로 변태할 거라는 허망한 망상을 가진 채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등장한 젊은 여성 클라리스는 영화 내내 서툴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사건을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는 가련한 여성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새끼 양을 구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인마 버팔로 빌의 집까지 들어서서 벌벌벌 떨면서 납치된 상원의원의 딸을 구조하려 백방으로 애쓴다.
그 모습을 버젓이 바라보며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은 클라리스를 죽이려하기보다 오히려 자기가 갈구하는 여성성을 보았다는 듯 손을 뻗는다.
어쩌면 한니발 렉터가 클라리스를 예수가 새끼양을 인도하는 것과 비슷하게 묘사하며 그림을 그렸듯 버팔로 빌은 클라리스가 보여주는 고뇌하는 여성성에 매혹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받았다.
영화 중에 렉터 박사와 비슷한 인물로 칠턴 박사도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같은 박사다. 둘 다 인간을 실험쥐로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칠턴이 렉터와 달리 클라리스의 호감을 못 사게 된 건 너무 성적인 관점으로만 그녀를 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렉터의 눈빛이 더 샅샅이 꿰뚫어보는 것 같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그건 인간적인 캐릭터에 관한 호기심이었다.
렉터 박사가 범인에 대해 힌트를 주면서 클라리스에게 한 질문이 있다.
“본질이 뭐지?”
그러면서 그는 자답하길 “살해의 목적이자 본질은 탐욕”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사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탐욕은 살고 싶은 자의 본질이 아닌가?
어떻게 ‘죽이고 싶은 자의 본질이 살고 싶은 자의 본질과 같다’는 명제를 놓을 수 있지?
그런 물음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정말 이 작가에게도 놀라웠지만, 이 감독에게도 감탄하는 영화였다.
기생충을 보고나서 (0) | 2020.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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